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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받는 독후감은 따로있다. 독후감 잘 쓰는법.

현타맨 2018. 11. 16.


상받는 독후감은 따로있습니다.

'독후감 잘쓰는 법'

인정받는 수준높은 독후감 쓰는법




독후감 쓰기에 대한 안내

고민의 고민을 거듭한 결과, 국어 공부의 가장 좋은 방법은 독후감 쓰기였다. 10여 년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으로 얻은 결론도 마찬가지이다.
독후감이라는 게 무엇인가. 글을 읽고, 글의 내용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기의 생각과 느낌을 정리한 것이 독후감이다. 국어 과목에서 해야 할 공부인 읽기와 쓰기가 다 들어있는 것이다. 그뿐인가. 글을 읽으면 그 속에 들어있는 온갖 지식이며 진리를 얻을 수 있으니, 국어 공부 이외에도 많은 공부가 됨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인지 학교에서 가장 많이 내는 숙제가 독후감이다. 초·중등학교는 말할 것도 없고, 대학에서도 독후감은 숙제의 단골 메뉴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그렇게 끊임없이 쓰는 독후감이건만, 학생들은 독후감 쓰기를 어려워하고 싫어한다. 왜일까?
아마도 그 이유는 쓰는 법을 제대로 일러주지 않은 채 무조건 쓰라고만 해서인 듯하다. 독후감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제대로 일러주지 않으니 쓰는 실력이 나아질 리 없고, 나아지는 것 없이 의무적으로 계속 써야 하니 짐으로밖에 여기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제대로만 가르치고 제대로만 실행한다면, 독후감 쓰기는 국어 공부를 위해서도, 그 이외의 공부를 위해서도 참으로 좋은 공부방법이다. 독후감은 무엇이며 어떻게 쓸 것인가. 독후감을 위해서는 어떻게 읽을 것인가.


1. 독후감은 왜 쓰는가

(1) 독후감 쓰기를 위해 글을 읽으면 읽기 능력과 함께 읽기와 관련된 사고력이 좋아진다.
글을 읽는다는 것은 글 내용을 이해 분석하고, 이에 따른 비판과 감상을 통해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는 내면화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읽기는 기본적으로 이와 관련된 사고력을 신장시킨다. 그런데 독후감을 쓰기 위해 글을 읽을 때는 그 어떤 읽기보다 읽기의 전 과정을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수행할 수밖에 없으므로, 독후감 쓰기를 하면 읽기 능력과 함께 그에 관련된 사고력을 신장시키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2) 독후감 쓰기를 하면 쓰기 능력과 함께 쓰기에 관련된 사고력이 좋아진다.
글을 쓰는 행위는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여 글의 주제와 의도에 맞게 정보들을 정리하고 체계화하는 사고의 과정이며, 글이란 그렇게 체계화한 사고의 덩어리이다. 따라서 글을 쓴다는 것은 곧 사고 훈련이니, 독후감을 쓰면 쓰기 능력이 신장되고, 동시에 정보의 중요도를 판단하고 이를 정리하여 체계화하는 등 사고력의 신장을 얻을 수 있다.

(3) 독후감 쓰기를 위해 글을 읽으면 그 속의 많은 지식과 지혜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정서를 순화하고 정신을 수양할 수 있다.
글은 역사를 통해 누적되고 개인의 체험과 사색을 통해 쌓은 온갖 지식과 지혜가 들어있으니, 독후감을 쓰기 위해 적극적인 의도를 가지고 글을 읽으면 그 속에 들어 있는 것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얻을 수 있다.

이렇게 하여 얻은 것들은 학문을 하거나 업무를 수행하거나 삶의 전 과정에서 소중한 자산이 될 뿐만 아니라, 수능시험에도 직접적인 도움이 된다.


2. 독후감은 어떻게 써야 하는가.
고등학생들의 독후감을 읽어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렇게 초등학교 2학년생 조카 녀석의 글과 비슷할까. 어쩌면 이렇게 몇 년 전 저희 선배들이 쓴 글과 같을까.
그들의 독후감을 보면 거의 이렇다. '-를 읽고'를 제목으로, 서두에서 읽은 동기를 간단히 밝힌 다음, 줄거리를 독후감의 분량에 맞춰 길게 요약하고, 무엇을 느끼고 깨달았는지로 끝맺는다. 나이를 먹어도 학년이 올라가도 독후감은 발전하지를 않는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달라지는 건 독후감의 길이가 좀 길어지고 어휘가 좀 고급스러워진 것일 뿐이다.
기본적으로 독후감도 그 자체로 한 편의 글임을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독후감은 비록 텍스트를 바탕으로 시작하는 글이기는 하지만 텍스트에 종속된 글이 아니다. 따라서 그 자체로 하나의 글로서의 요건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1) 제목은 글 내용에 맞게 붙여야 한다.
독후감상문은 텍스트(앞으로 등장하는 텍스트의 의미는 작품으로 보면 됨)에 종속되어 있는 글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글이라고 했다. 따라서 하나의 같은 텍스트를 읽고도 독후감의 내용은 다를 것이므로 제목도 모두 달라야 한다. 제목도 글의 일부일 뿐만 아니라 글의 얼굴이다. 그냥 '[춘향전]을 읽고'가 아니라, 글 내용에 맞게 제목을 붙여야 하는 것이다. 춘향의 정절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말하고 싶다면, '춘향의 정절과 21세기의 성윤리' 정도로. 다만 제목에서 감상의 대상이 되는 글, 즉 텍스트를 밝히고 싶은데 들어가지 않았을 경우에는 '[춘향전]을 읽고'는 부제로 붙이면 될 것 같다.

(2) 읽은 동기는 꼭 필요한 경우에만 쓰자.
학생들이 제시한 읽은 동기를 보면, '선생님이(또는 친구가) 권해서', '어느 신문에서(또는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서) 소개하는 것을 보고', '책꽂이에 꽂혀 있는 것을 우연히 보고' 라고 한 것이 많고, 어떤 경우 '독후감 숙제로 지정된 작품이어서 할 수 없이'라고 한 것도 있다. 아마도 이들 동기는 그대로 꾸밈없는 사실일 것이다. 특별한 동기가 있어서 글을 읽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으니까. 그러나 사실이냐의 문제와 글에서 필요한 것이냐의 문제는 별개이다. 읽은 동기는 독후감의 한 요소이기는 하나 반드시 넣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글의 주제를 표현하는 데 필요한 경우에만 쓰는 것이다. 글의 통일성을 위해서이다. 그러고 보면 앞에서 열거한 읽은 동기는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글의 내용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군더더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성 윤리의 혼돈 속에 무엇이 옳은가를 생각하고 싶어 대표적인 연애소설 춘향전을 새로 읽었다'는 정도라면 쓸 만한 읽은 동기가 될 것이다.

(3) 줄거리보다는 자신의 감상을 중심으로 쓰자.
학생들의 독후감을 보면 독후감의 대부분을 텍스트의 줄거리가 차지한다. 아예 작정을 하고 텍스트의 줄거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분량에 맞춰 정해진 분량의 몇 줄을 남기고 늘어놓은 뒤 간단한 의견과 감상으로 마무리를 하는가 하면, 줄거리 한 대목 쓰고 양념 치듯 감상 한 구절씩 끼워 넣는 경우도 있다. 어쨌거나 줄거리가 위주이기는 마찬가지이다.
물론 독후감을 쓰기 위해서는 텍스트의 줄거리, 즉 요점을 파악해야 한다. 독후감은 텍스트에 대한 면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할 때 좋은 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독후감은 줄거리를 쓰는 요약문이 아니다. 텍스트의 내용이 모두 들어 있어야 하는 것도, 그래서 독자가 그 독후감을 통해 텍스트의 내용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독후감은 어디까지나 글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쓰는 글이다. 자신의 생각과 감상이 내용의 중심을 차지하고 양의 대부분을 차지해야 하는 것이다. 텍스트의 줄거리는 써도 되고 안 써도 된다. 꼭 필요할 때 필요한 대목만 쓰는 것이다. 그것도 감상을 위한 근거로 이용하는 차원에서.

(4) 감상은 다양한 것, 교훈에 집착하지 말자.
글에 대한 감상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감상의 내용은 필자의 입장이나 등장 인물에 대한 비판과 평가가 될 수도 있고, 글 속의 사연이나 표현의 아름다움 등에 대한 정서적 반응이 될 수도, 글이 주는 지식이나 지혜나 교훈에 대한 감탄이나 깨달음이 될 수도, 다른 무엇으로의 상상이 될 수도 있다.
저학년일수록 교훈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그 시절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주로 그런 쪽으로 유도하고 요구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교훈은 감상의 한 종류일 뿐이다. 교훈에 대한 깨달음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말자. '나는 이 글을 통해 무엇을 반성했고, 어떻게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는 식의 얘기가 꼭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자. 들어가도 되고 안 들어가도 되는 것이다.

(5) 자기만의 개성과 창의성이 있는 감상을 쓰자.
글에 대한 감상에는 정해진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비판에서부터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읽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 것이다. 모든 글이 그러하듯 독후감도 개성과 창의성이 있는 감상을 써야 진정한 글, 가치 있는 글이라 할 것이다.
(6) 다만 그 개성적인 감상은 텍스트에 대한 타당한 해석을 바탕으로 해야 하며, 독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감상이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또 그렇게 남과는 다른 개성적인 감상을 담아야 가치있는 독후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텍스트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 상태의 감상은 엉뚱한 얘기에 지나지 않으며, 공감을 얻지 못하는 글은 이상한 글일 뿐이다. 텍스트에 대한 정확한 해석 위에, 논리적인 타당성을 갖춘 감상이어야 한다. 그래야 독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

(7) 자기 관심사에 맞는 한 가지 문제에 초점을 맞추자.
독후감은 텍스트의 전부를 다루는 글이 아니다. 텍스트에서 중요한 것이라 하여 반드시 다루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다시 한 번 되새기자. 독후감은 요약문이 아니다. 하나의 글이다. 좋은 글은 초점이 분명한 글이다. 좋은 글은 글의 모든 요소가 한 가지 초점에 부합하는, 통일성을 갖춘 글이다. 텍스트에서의 중요성에 상관없이 자기의 관심사에 맞는 것 딱 하나를 골라 이를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어떤 텍스트에서 다룰 만한 문제가 <1>부터 <10>까지 있다고 치자. <문제1>은 텍스트에서 1만큼 중요하고, <문제2>는 2만큼 중요하고, <문제10>은 10만큼 중요하다고 치자. 만약에 요약문을 쓴다면, 우선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10>부터 다루어야 할 것이다. 글의 길이에 맞춰 <문제10>부터 하나씩 늘여가며 쓸 것이다. 다섯 문제를 다룰 수 있는 길이라면 <문제10>부터 <문제6>까지의 문제를, 여덟 문제를 다룰 수 있는 길이라면 <문제10>부터 <문제3>까지. 그러나 독후감에서는 분량이 아무리 길어도 한 가지에만 초점을 맞추어야 하며, 그것은 <문제10>이어도 <문제1>이어도 상관없다. 텍스트 [춘향전]에서 두 주인공의 사랑과 탐관오리 '변사또'의 횡포가 중요도 점수 10과 9를 차지하는 문제라 하더라도, 독후감을 쓰는 이의 관심이 관노 '방자'나 하녀 '향단'에게 있다면 그것을 중심으로 써 나가면 되는 것이다.

(8) 내용에 맞는 형식을 갖추자.
좋은 내용은 좋은 형식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좋은 형식은 내용에 가장 부합하는, 그래서 내용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문체도, 어조도. 양식적인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독후감을 쓰는 양식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독백적인 서술 양식이 보통이지만, 일기를 쓰듯이 편지를 쓰듯이 쓸 수도 있다.
정말로 제대로 쓴 글은 그 내용에는 다른 형식이 용납되지 않는다고 여겨질 만큼 내용과 형식이 잘 어울리게 쓴 글이다. 그런 글을 보면 글에 있어서 형식은 내용의 겉모습이 아니라 내용 그 자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가끔 형식 자체에 집착하는 경우가 있다. 독백체가 평범하다 하여 이를 벗어나려고 일기체나 편지체 형식으로 쓰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양식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용을 표현하기에 부합할 때 가치가 있는 것이다.

(9) 텍스트에 종속된 글이 아니라 그 자체로 독립된 글로서의 요건을 갖춘 독후감이 되도록 하자.
만약에 독후감이 텍스트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를 다루어야 하고 그 문제에 대한 감상에 객관적으로 옳은 정답이 있다면, 그 텍스트에 대한 독후감 중 제대로 된 것은 딱 하나의 독후감뿐, 다른 작품이 존재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독후감은 그 자체로 한 편의 독립된 글이다. 모든 글이 그러하듯 자기만의 개성과 창의성을 갖춘 독후감이라면 좋은 독후감이 될 수 있으며, 그런 점에서 하나의 텍스트에 대해서도 좋은 독후감이 얼마든지 많이 나올 수 있다. 텍스트를 철저히 이해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감상을 통일성을 갖춘 구조 속에 적절한 형식으로 표현하면 좋은 독후감을 쓸 수 있을 것이다.

※ 독후감 내용의 수준
독후감은 텍스트를 이해 수용하는 수준을 넘어 재창조하는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 독후감의 내용은 텍스트 내용과의 거리를 기준으로 할 때 다음 몇 단계 수준으로 나눌 수 있다. 고전 소설 [흥부전]을 예로 알아보자.

* 제1단계
텍스트의 의미, 그것도 겉으로 드러나 있어 누구나 그렇게 해석하게 되는 의미를 그대로 이해하고 그대로 수용하는 수준이다. 이를테면 흥부전을 읽고 형제간의 우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달았고, 앞으로 이를 마음속에 새겨 실천하며 살겠다는 식의 내용이다. 이는 텍스트의 내용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로서 초보적인 감상 수준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그 의미가 이미 알려진 것일 경우 이 수준의 독후감은 상투성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 제2단계
텍스트의 내용을 분석하고 재구성하여 숨은 의미를 찾아내는 수준이다. 이를테면 [흥부전]에서 형제간의 우애와 권선징악이라는 표면적 의미를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유교적 도덕 관념을 중시하는 중세적 가치관과 경제적 부를 중시하는 근대적 가치관 사이의 갈등을 찾아내어 따져보는 것이다. 작품에 대한 기존의 해석을 벗어나 새로운 해석을 하는 것으로서 학문적 성격이 강하지만 주관적 인상을 허용된다. 제1단계와 비교할 때, 텍스트에 초점을 둔다는 점은 마찬가지이지만 자기 나름의 경험이나 가치관을 반영하고 새로운 의미를 찾아낸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능동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개성적인 관점을 적용하면서도 논리적 타당성을 갖추어야 한다.

* 제3단계
텍스트의 내용을 자기가 처해 있는 문제 상황에 활용하는 수준이다. 이를테면 [흥부전]이 시사하는 의미인 '형제간의 우애'를 바탕으로 자신이 처해 있는 문제 상황을 새롭게 해석하고 성찰하여 해결책을 모색해 보는 것이다. 이런 식이다. '나는 형과 자주 다툰다. 그 이유를 잘 몰랐다. 흥부와 놀부의 갈등은 놀부의 물욕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와 형의 다툼도 이기적 욕심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때의 문제 상황은 개인적인 것일 수도 있고 시대 사회적인 것일 수도 있다. 텍스트의 내용보다는 자신의 문제 상황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 앞의 두 단계와 다른 점이다. 텍스트의 이해 수준에서 벗어나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중심으로 하면서도 초보자도 쉽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 제4단계
텍스트의 내용이 지닌 의미를 확장하여 발전시키는 것이다. 보통 의미의 확장 발전은 일반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를테면 [흥부전]에서 '형제간의 우애라는 도덕'의 문제를 '인간의 삶에서 도덕은 어떠한 가치가 있는가', '행복한 삶, 가치있는 삶을 위해 도덕이 필요한가' 같은 문제로 일반화하여 생각해 보는 것이다. 텍스트의 의미를 말 그대로 확장 발전시켜 재창조하는 수준이라는 점에서 좋은 독후감이 될 수 있다.

* 제5단계
텍스트의 논지와 입장을 비판 평가하는 수준이다. 이를테면 [흥부전]에서 '흥부'나 '놀부'의 행동 및 가치관, 그리고 '흥부'를 선(善)으로 '놀부'를 악(惡)으로 규정하여 권선징악을 강조하려고 했던 작자의 입장과 태도를 비판하여 반론을 펼치는 내용이다. '내가 흥부라면 이렇게 했을 것이다' 하는 형식도 좋다. 입장이나 논지에 대한 반론이므로 논리적 타당성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 제6단계
텍스트의 내용 및 형식과 관련하여 그 작품성을 비판 평가하는 수준이다. 이를테면 [흥부전]에서 '선악의 갈등 구조가 너무 단순하고 상투적이지 않은가, 두 주인공의 행동과 흥부의 승리로 마무리되는 결말에 이르는 일련의 사건은 개연성이 있는가, 문체를 비롯한 형식은 작품의 주제와 잘 부합하는가' 등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이 경우 비판 평가를 위해서는 마땅히 잣대를 제시해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독후감을 쓰기 위해서는 소설에 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어야 한다. 이런 내용의 독후감은 비평과 비슷한 성격을 띄지만 객관적인 근거보다는 자기 나름의(주관적) 인상을 위주로 전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자유롭다.


● 독후감 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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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갓을 벗은 시인 김병연의 삶과 시
- 이문열의 소설 <시인>을 읽고
김수범

소설 읽기의 재미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더구나 소설 속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이미 알고 있던 사람의 또 다른 면모를 보게 될 때에는, 새삼 자신의 어두운 눈을 씻으며 세상의 일 하나하나를 다시 살피게 된다.
소설 <시인>을 읽는 재미는 방랑시인 김삿갓의 삿갓 속에 감춰져 있던 인간 김병연의 얼굴을 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 동안 사람들의 말로 이런저런 글로 알아온 김병연은 세상에 거리낄 것 하나 없는 자유인이었다. 삿갓 하나 눌러쓰고 세상 곳곳을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며, 조롱이며 야유며 못된 세상에 대하여 품은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사람 밖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유려한 문체와, 치밀한 논리로 되살려 낸 '삿갓 벗은' 김병연은, 삶의 유전(流轉)에 울고 웃는 우리네 인간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체제에 대한 반역으로 몰락해 가는 집안의 운명에 자신을 맡길 수밖에 없는 유년(幼年)을 지나, 기나긴 세월 동안 집요하게 가해오는 체제의 보복에 쫓기고 짓눌려 살아있다 할 수 없는 삶을 이어가야 했다. 신분회복과 영달을 향한 집착과 오기로 몸부림을 치다가, 그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현실로부터 일탈하여 자유로움을 찾아 헤매야 했다. 어쩌면 그는 인간 삶의 숙명적 아픔을 온몸으로 부딪쳐간, 사람 속의 사람이었다.
이렇듯 삿갓을 벗고 얼굴을 드러낸 인간 김병연은 인간의 삶과 세상의 일을 다시 보게 했다.
조부의 반역 행위에 대하여 '원망과 혐오'로부터 '동정과 미화'를 거쳐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오늘날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가치와 감정의 편향을 다시 보게 되었다. 사람들을 뭉치게 하고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야 할 이데올로기가, 오히려 제 몫 지키기의 도구가 되어, 편을 가르고 앞길을 막는 우리네의 모습이 새삼 또렷해졌다. 또 그러한 배타적 이념의 논리로 말미암아 어둠으로 내몰린 사람들의 괴로움이 어떤 것인지, 이 국가와 이 사회가 그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똑똑히 떠올랐다.

그러나 말의 힘이며 시의 값을 가르치는 국어교사로서의 본분 때문일까. 그의 삶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시가 차지한 자리였다. 홀어미와 형의 비원(悲願)이자 자신의 갈망이기도 했던 신분의 회복과, 처자(妻子)와 함께 누릴 범인(凡人)의 행복까지, 모두 버리고 걸어갔던 그의 시를 향한 길에서, 시의 값이 얼마나 큰가를 볼 수 있었다. 비록 그가 시인으로서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좌절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방편에 지나지 않았다 해도, 그가 얻은 시는 인간이 소망하는 그 모든 것을 갈음하였으며, 그 누구의 것에도 모자라지 않는 삶의 완성을 가능하게 하였다.
또한 그 여로(旅路)에 대화며 이야기로 녹여놓은 시에 관한 철학은 시의 값과 길을 알기 쉽게도 풀어주고 있었다. 마치 술래를 피해 찾아든 바위 밑 나무 사이에서 누군가 숨겨놓은 보물을 얻는 듯한 즐거움으로, 시란 무엇이며 시가 어찌 그렇게 큰 값을 가질 수 있는가를 읽을 수 있었다. 시란 마음이 그 얽매임에서 벗어나 만상(萬象)이 품은 바 원래의 뜻을 바라봄으로써 아무도 보지 못한 것을 보는 것이며, 그것을 언어와 문자의 범주(範疇)를 넘어선 언어로 빚어내는 것이니, 시를 짓는 것은 곧 없는 것을 만듦이요, 시인 자신 몸과 마음의 자유를 얻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혁명을 도모하던 구월산 무리의 산채에서, '생산'의 하나로서 시가 보여준 성과와 해악을 통해 시가 세상을 위해 어떻게 쓰여야 하는가를 볼 수 있었다. 시는 결코 패배자의 피신처일 수도 없으며 일탈자의 은둔처일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영달을 위한 도구여서도 세상을 향한 분풀이의 무기여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시는 세상과 사람의 앞길을 밝히는 기름이어야 했다.
어느덧 시를 익히고 시로 빚을 삶을 가르친 지도 십여 년이 지났다. 그러나 아직 시의 값에 대한 믿음도, 시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한 헤아림도 또렷하지가 못하다. 세상을 보는 눈 또한 제가 선 자리를 벗어나지 못한 채 치우치고 속단하기 일쑤이다. 이제 소설 <시인>을 읽으며, 두 세기 전 그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세상에 맞선 역적의 후손에게 씌워진 좌절과 일탈의 슬픈 운명을 딛고, 시의 궁극을 향해 걸어간 시인 김병연의 고뇌 어린 여정을 통해, 오늘의 세상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그리고 그 세상 속에 살아가는 인간의 삶에서 시는 과연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돌아보며 가슴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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